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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이사

by RaccoonB 2015. 6. 29.

최근 이사문제로 신경을 쓰면서 느끼는 건 합리적 판단과 관행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간극이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내가 가고자하는 집에는 세입자가 없었다. 따라서 나는 가장 가까운 이사일을 정해서 이사하거나, 현재 내가 사는 집의 계약만료일에 맞춰서 갈 집의 이사날짜를 정했다. 그리고 만료일 전에 다른 세입자가 내가 현재 사는 집에 들어오게 되면 이사날짜를 조정하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갈 집에도 세입자가 있을 때 발생했다. 내가 계약만료일을 중심으로 만료 한 달 전에 기존 집주인에게 이사할 의사를 통보하고 이사갈 집을 알아본 건 나름대로의 합리적 판단의 결과였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권리 및 의무는 계약만료시까지 유효하다. 따라서 내가 이사할 의지가 있다면 계약이 만료됨과 동시에 이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래서 나는 계약만료일을 중심으로 집을 알아보았고 내가 이사하고자 하는 날에 근접한 시기에(내 이사예정날짜보다 4일 뒤에 계약이 만료되는 집을 부동산을 통해 찾았다.
그런데 내가 찾은 집에 현재 거주하는 세입자는 만료일로부터 최소 두 달 후에 이사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유는 아직 이사할 집을 알아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우선 나는 그 세입자가 의사할 의사를 표명하여 집을 내놓았고 계약만료가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알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부동산을 통해 이를 받아들일 수 없고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전했다. 세입자는 (부동산에 따르면)이에 동의했고 내가 이사가려는 날짜와 근접한 시기에 이사할 수 있는 집을 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다시 온 전화에서 해당 세입자는 해당 날짜에 이사가 불가하다고 전해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이사가려고 했던 집에 현재 거주하는 사람이 집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사갈 집을 알아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이사갈 집에 사는 사람이 이사갈 집에 사는 사람이 이사를 갈 수 있어야 이사를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 사람이 이사가고자 하는 집에 사는 사람이 이사를 갈 수 있어야.....이게 뭐하는 짓인지.

그래서 나는 내가 이사갈 날짜를 정했고 그에 따라서 집을 알아보았으나 이사날짜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던 다른 세입자들에 의해 이사를 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왜 그들이 집을 내놓고도 다른 집을 알아보지 않았는가에 대해 물어보니 부동산은 그게 당연한 거고 관행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이사하려했던 집에 사는 세입자는 계약만료 이후 자신이 다른 집에 이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사이의 월세분을 부담해야할 것이고, 나는 계약만료 후 집이 나간다면 내가 가려는 집에 사는 세입자가 이사하기 전에 갈곳이 없어지는 위험으르부담해야했다. 부동산은 이러한 문제가 내가 애초에 현재 사는 집이 나가지 않았는데도 그저 계약만료에 맞춰 이사계획을 잡았기 떠문이라고 했다. 나는 이 '세입자가 온다고 할 때부터 집을.알아보는' 관행이 결국 집주인이 월세분의 손실을 입지 않기 위해 계약만료 이후에도 현 세입자에게 월세납부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세입자를 붙잡아두기 위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세입자는 해당하는 기간 동안 월세라는 의무를 이행하고 집의 한시적 소유라는 권리를 얻기 위해 계약을 하는데 이 의무가 이상하게도 집 소유주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입자에게 부당하게 전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이 '관행'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인 것이다.

나는 임대차 과정에서 생긴 이러한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고 따라서 국가 또는 지자체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위험부담 및 보증을 감당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서울시에서는 '전월세보증금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들이 위험을 부당하는 방식은 '대출'이었다. 계약만료 이후에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거나 이사날짜가 서로맞지 않게 되어 발생하는 문제를 지자체는 '개인'의 책임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이자를 대가로 돈을 빌려주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이자율이 낮다해도 이는 명백한 책임전가다.

지금 집에서 이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세입자와 소유주 사이에 발생하는 '정서'가 거북했던 탓이 크다. 나는 매달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이를 통해 현재 거주하는 집에 대한 일시적 소유를 권리로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항상 집을 맘대로 써서는 안된다는 시선에 계속해서 시달려야했다. 그것은 집을 원래 상태대로 돌려줘야한다는 나의 의무를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것을 넘어 일시적 소유 자체에 대한 규율을 요구했다. 건물은 분명 소비재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건물은 낡는다. 하지만 전혀 건물에 대한 감가상각이 적용되지 않는 이 요상한 구조 안에서 임차인은 요상한 규율에 얽매이게 된다. 자본이 가져오는 예속관계의 불편함은 여기에 있다. 갑과 을이 단지 노동력의 교환을 넘어 정서적, 생활 안에서의 예속으로 이어진다는.점은 자본의 질서를 단순한 분노의 대상만이 아닌 해체와 극복의 대상으로 보아야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