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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영상

<핸콕>, 2008

by RaccoonB 2012. 6. 4.

 

 

 

* '슈퍼히어로'라는 말이 영화의 한 장르로 자리잡을 정도로 널리 퍼진 단어이기에 불가피하게 우리말로 치환할 수 있는 부분을 영어로 표현한 점 양해바랍니다


슈퍼히어로는 왜 항상 착하고 성실하며 정의감에 불타야 하는가?



핸콕의 주인공 핸콕은 그야말로 '초' 슈퍼히어로다. 하늘을 날고, 힘도 세며, 어떤 충격에도 다치지 않는다. 힘도 상상을 초월하게 세다. 그동안 나왔던 어떤 슈퍼히어로보다 물리적으로는 최강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핸콕은 그가 사는 LA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슈퍼히어로이지만 무척이나 '불성실'하고, '불쾌'하고, '불친절'하고, '불만족'스러운 슈퍼히어로이기 때문이다. 그는 600건이 넘는 소송의 피고소인이고, 정식으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상태이며, 모든 시민에게 'Asshole(우리말로는 병X, 꼴통, 개XX 정도의 욕)'이라고 불리며, 그가 일으킨 피해는 천문학적이다. 영화 중에서 핸콕이 기차에 치일뻔한 운전자를 구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그가 사람을 구한 점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구하느라 기차가 망가진 걸 두고 그를 욕한다. 핸콕의 위상이 이정도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 것은 오랜 슈퍼히어로 영화의 주제에 던지는 굉장히 크고 중요힌 질문이자 성찰이다. 왜 모든 슈퍼히어로는 기본 사양으로 착함, 성실함, 정의감을 구비해두고 있는가. 최근에야 영화를 통해 정의감보다는 생계와 사회생활에 시달리는 영웅(스파이더맨)이라든가, 자신의 정의가 실현될 것에 대해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영웅(배트맨)이라든가, 정의나 사명감에 그리 개의치 않고 마음대로 하는 영웅(아이언맨)들이 새로운 슈퍼히어로 상(像)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그들이 기본적으로 스스로의 존재 목적에 충실하고 잘 이해하고 있는 반면에, 핸콕은 건성건성이고 자기 마음대로며 사명감 따위는 눈꼽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다. 술 취해 자다가 아이가 꺠워서 겨우 겨우 날아가는 핸콕의 모습은 그야말로 귀찮음 그 자체다. 이런 슈퍼히어로가 또 어디있을까. 슈퍼맨이 귀찮아서 직장일에만 매달리는 모습, 배트맨이 귀찮아서 돈 쓰기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핸콕, 이보다 더 인간적이디 인간적인 슈퍼히어로가 어디있단 말인가.



 

 

왜 하필 나야? 왜 내가 해야하는데?



우리는 '해야하는 일'의 거의 대부분을 왜 해야하는지 모르는 것에 익숙해있다. 물론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기에 우리에게 주어졌겠지라는 대충의 짐작은 하지만,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결국 알지 못한다. 그래서 주저하고 방황하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답은 기껏해야 '너밖에 할 사람이 없어.'인데 이건 '네게 주어진 일에서 도망치려하지마!'라는 밑도 끝도 없는 윽박지름보다는 훨신 양호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답은 아니다. 핸콕의 문제로 돌아와보면 핸콕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주어진 밑도 끝도 없는 힘을 비교적 나름 좋은 일에 쓰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는 자신이 이런 일들을 왜 해야하는지 모른다. 때문에 그는 더 멋있고 더 깔끔하게 일을 처리할 필요를 못느낀다. 말로 표현하면 '좋은 일 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거야?' 정도? 헌데 그 일에 대해서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자기들은 하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대놓고 욕을 한다. 결국 해야하는 이유 따윈 잊어버리고 귀찮은 뒤치닥 거리 정도로 세상을 구원하며 그냥 되는대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뭐, 굳이 '우리의 모습도 이와 같지 않습니까'하고 식상하게 언급하지 않아도 통감하는 바가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던 핸콕이 공익 PR 전문가 '레이'그는 를 만나고 그는 핸콕에게 지금까지 그가 생각하지 않았던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역할을 이야기한다. '당신은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해요. 당신은 슈퍼히어로니까.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당신은 행복해질 수 없어요.'. 레이의 모델 제시는 핸콕에게 그리 끌리지 않았지만 레이의 뜻대로 하기로 한 핸콕은 바뀌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억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억지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시작하고, (억지로)다른 사람을 인정하도록 노력한다. 핸콕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것이 옳다는 확신도 없지만 레이의 확신과 헌신, 사랑은 그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그리고 가석방을 조건으로 주어진 첫 임무에서 핸콕은 배운대로 수없이 'Good Job'을 외치고, 조심스럽게 착지하고,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시민의 영웅이 된다.




평범과 특별,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핸콕은 레이의 아내 '마리'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듣게 된다. 전지전능한 힘을 가졌지만 짝지어진 한쌍이 함께있으면 평범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모든 종족이 전멸하고 자신 둘만 남았다는 이야기에 핸콕의 고민은(영화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시작된다. 서로 짝지어진 사람끼리는 자석처럼 서로 만나게 되고 더없이 큰 사랑을 느낀다는 그들 종족의 특성은 결국 핸콕에게 사랑이냐 영웅이냐의 갈림길을 제공한다. 이는 수많은 슈퍼히어로물이 따라가는 상투적인 구도이다. 영웅의 길을 위해서 결국 모든 것(그중 제일은 역시 사랑)을 포기해야한다는 설정 때문에 배트맨은 레이첼을 잃고, 슈퍼맨은 로이스의 기억을 지우고, 싸이클롭스는 진을 잃고, 데빌맨은 잘린 미키의 목을 들고 울어야했다. 그래서 보통은 연인을 잃은 슈퍼히어로에게 더 큰 능력을 주는 식으로 사랑을 버리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이야기하지만 어쨌거나 슈퍼히어로의 큰 사명은 모든 것을 포기할때야 이룰 수 있다는 설정은 핸콕에게 고뇌를 준다. 약해진 채로 총을 맞고 실려온 핸콕에게 마리는 그의 진짜 사명을 알려준다.

'당신은 처음부터 영웅으로 창조되었어. 마지막까지 살아 타락한 세상을 구할 구원자. 그게 당신이야.'

그리고 쳐들어온 악당은 핸콕에게 총을 쏘며 이야기한다. '그만 쉬어. 핸콕. 살만큼 살았잖아. 때가 되면 좋은 곳으로 가야지'
그리고 핸콕은 눈을 감는다.

이 장면은 매트릭스의 후반부 장면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둘 다 진정한 영웅이라고 주위에서 믿고 있고, 자신이 진짜 영웅인지 스스로가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악당과 맞서다 숨이 끊어진다. 네오에게 죽음은 진정한 구원자임을 각성하기 위한 통과 의례였지만 핸콕에게는 사명을 결단하기 위한 시간이다. 결국 그의 결정은 어떠했는가? 핸콕은 눈을 뜨자마자 있는 힘껏 마리에게서 멀어진다. 그전까지 사랑하는 이의 곁을 떠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했던 수많은 그의 동족들과 다르게 그는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한 길을 떠난다. 그 사명을 위해서 그의 가장 크고 포기하기 힘든 것을 내어버리는 그의 모습은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발악, 그 이상의 무게가 있다.




 

 

우습지만, 그 이상(理想)을 위하여.



핸콕을 변화시킨 공익 PR전문가 '레이'는 대기업들에게 'All Heart'라는 로고와 슬로건을 제안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이 'All Heart'는 그동안 손목 팔찌 판매(Live strong(http://www.livestrong.org) 같은 슬로건을 이야기하는 듯 싶다)처럼 소극적인 방식으로의 기부가 아니라, 기업의 근본적인 기부활동(예를 들면 최빈국에 결핵 약품을 무료로 공급한다든 지)을 통해 기업 자체의 이미지를 '세계를 돕는 기업'으로 바꾸고자 하는 PR 프로젝트이다. 당연히 이 프로젝트는 어떤 기업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굳이 '세계를 돕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는다는 이점으로 약품 무료 공급이라는 손실을 감행하기에는 손익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레이 스스로도 이 일이 '풍차에 덤벼드는 돈키호테 꼴'이라고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는 그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사실 핸콕을 변화시킨 것도 그가 품고 있는 이 All heart 정신의 일환이었다.
핸콕이 모범적으로 거듭나고 영웅으로 칭송받자 레이를 무시했던 기업들은 다시 그를 찾아와 다시 그의 말을 듣고자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자리에서 레이는 열심히 다시 그의 All Heart를 외쳐대지만 그에게 중역들은 그저 묻는다. '그보다 핸콕은?'
레이의 All heart는 모두가 골칫덩이로 여기던 핸콕을 변화시켰고 그 이상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핸콕을 변화시킨 All heart보다는 변화된 핸콕 그 자체를 원한다. 대중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핸콕을 어떻게 더 잘 이용할 수 있을까에 집중된 그들의 관심은 여전히 손익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다. 세상이야 뭐 항상 이런 식이다.
우리에게는 항상 우리가 바라봐야할 거대한 이상이 있다. 모두가 비웃고 관심가지지 않지만 그 이상이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킨다는 데에는 우리에게 아무런 이견이 없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그 변화의 증거 핸콕이 있다. 모두가 항상 놓치고 있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이 그를 변화하게 했는가 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무지 들어먹지 않는 세상에서 여전히 꿈같은 소리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언젠가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 믿고 말이다.



때때로 현실이 우리의 이상을 있는대로 짓누를 때가 있다. 우리의 꿈이 터무니 없다고 비웃거나, 우리가 하는 일의 동기보다는 결과에만 관심이 있으며,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런 감사도 느끼지 못하고, 그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서 더 잘할 수 없냐고 비웃고 무시하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왜 내가 해야하지? 왜 하필 나야?'라며 불평섞인 자조를 내뱉지만, 우리가 우리의 진짜 존재 목적을 깨닫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희생과 포기를 감수하고서 우리의 사명으로 나아간다면 우리의 'All Heart'가 결국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듯 온 세상 모든 사람이 보게끔 널리 퍼지고 인정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