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onparade#1
제목에서 드러나듯 만화는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어떤 공연일지는 모르지만, 공연이 모두 끝나고 연극을 끝까지 감상한 관객들에게 보내는 인사. 그것이 27화에 걸친 이 만화의 이야기입니다.
평범함
종말을 앞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나 흔한 소재이면서도 식상하지 않은 묘한 소재입니다. 다가오는 종말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들은 봐도봐도 식상하지 않지요. 절망, 기쁨, 포기, 의지, 극복 등등 때로는 드라마틱하고 때로는 별볼일 없는 다양한 감정들이 드러나지요. 한편으로 종말은 실제로 직면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닙니다. 극한의 자연재해를 통해 유사한 체험은 할 수 있겠지만, 종말 자체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형으로 밖에 남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예정된 종말'이라면 더더욱이나요.
그런 종말을 맞이하게 된 등장인물들은 그야말로 평범합니다. 모두 평범한 대학생들이고, 그 자신이 어떤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든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평범하기 그지없습니다. 종말이 드러나는 3화까지의 묘사는 그런 평범함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가진 삶의 양상이라는 것을 쉽게 바꾸지 않지요. 작고 사소한 사건들은 우리에게 다양한 변화들을 불러오지만 의외로 너무 압도적인 사건들은 현실성을 잃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해 예측하는 인간의 상상력은 자유로운 한편으로 그 자신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토대로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온퍼레이드>는 이러한 평범함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끌고 갑니다. 작중 인물들은 평범하게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절망하고, 의지를 가집니다. 흔히 기대할 수 있는 놀라운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너무도 식상할 수 있지만 일관된 평범함은 식상함 이상의 현실감을 가져다 줍니다. 내용이 진행되면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대입하게 됩니다. 지호의 절망과 집착에 대해서, 수현의 사랑에 대해서, 동혁의 슬픔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이 만화가 가진 매력은 바로 이런 현실성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희망
피할 수 없는 종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온퍼레이드'는 그러한 희망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운석을 파괴하는 거대 기체, 마치 어렸을 때보던 로봇 만화가 항상 절망적인 악에 대한 정의의 승리로 끝나듯, '온퍼레이드'는 사람들에게 극적인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가능성이라는 치명적인 성질을 가집니다. 지호에게 유라를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항상 한 발 앞에서 좌절되던 아쉬움으로만 남은 것처럼, 수현의 구애에 대한 지호의 반응이 항상 미련을 주는 안타까움으로만 남은 것처럼 희망은 잡히지 않는 불확실함을 항상 내재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극 중에서 보이는 어떤 희망도 문자 그대로의 희망으로 남지 않습니다. 모든 희망은 변질되거나, 좌절됩니다. '현실적'이라는 말이 가진 부정적인 뉘앙스는 희망에 대한 큰 기대와 결과의 참혹함을 반영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시도에 대해서 '그래도 이건 이것 나름의 의미가 있을 거야'라고 위안하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건 모든 기대가 결국은 자신의 주관적인 것이며 누군가가 희망을 성취하면 그것이 또 다른 이의 절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시도 자체가 줄 수 있는 기쁨이란 미미합니다. 결국 인간은 그 끝에 와서는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위해서 자신을 태울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광충'은 무언가를 비추기 위해 빛을 내는 헌신이 아닌, 빛을 보고자하는 존재의 끊임없는 생존 자체에 가까울 것입니다.
사랑
극의 시작에서 지호는 연인인 유라와 헤어집니다. 헤어짐에는 어떤 이유도 맥락도 없습니다. 일방적인 단절은 이해의 여지를 주지 않고 납득하지 못한 지호는 목적없는 집착을 가집니다. 처음에는 다시 만나기 위해, 나중에는 이유라도 알고 싶어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집착합니다. 극이 진행되면서 유라는 지호에게 실질적인 관계보다는 추상적인 이미지로 남습니다. 만나야할, 보아야할 목적으로만 남았지만, 여전히 지호는 유라를 찾습니다. 이것이 지호의 사랑이라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수현은 지호를 좋아합니다. 지호의 유라에 대한 집착의 대체물이 되어서라도, 지호의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에 불과할지라도 수현을 향한 마음을 계속해서 놓지 않습니다. 지호가 자신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든 상관없이 지호에게 계속해서 마음을 전하고 관심을 쏟습니다. 이것이 수현의 사랑이라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동혁과 지은의 관계는 더욱 기묘합니다. 둘의 사이에는 사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흔한 이야기처럼 둘은 익숙함과 필요로 지내다가 시간차를 두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생각합니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세 가지 유형 모두 사랑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종말을 앞둔 상황이라고 해서 그 진정성이 받아들여질만한 것도 아닙니다. 셋 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유의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습게도 이러한 전형적인 모습을 끝까지 가져갑니다. 신기한 것은, 배경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들의 상황에 대해서 '그건 사랑이 아니야'라고 쉽게 단정하지 못합니다. 만화는 그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부분을 다소 극적이지만 덤덤하게 묘사함으로써 감정들의 깊이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고 느끼는 많은 것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그것을 단순한 욕구 내지는 집착으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그들의 상황에서는 부정됩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이미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 안에 깊이 녹아있어서, 그들의 성격 자체로까지 보여집니다. 어떠한 한 인물의 성격으로 규정지어진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그것을 다른 것으로 단정지어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의 감정은 그냥 그들 자신으로 남습니다. 이미 끝난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마음대로 해석하고 이름붙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것이 여전히 진행 중인 동시간의 사건으로 있을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추측 이상의 어떤 것도 섣불리 내놓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연극이 끝나고 나와 인사하기 전까지 우리는 그저 그들의 감정을, 행동을, 삶을 바라보고 감상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어쩌면 너무나 뻔해보이는 인물들에 대한 판단은 계속해서 유보됩니다. 마치 나의 삶에 대한 의미가 수많은 추측과 고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유보되는 것처럼 말이죠.
온퍼레이드
따라서 이야기는 단지 결말로서 남지 않습니다. 결말은 이미 모두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극의 결말만 듣고 내용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조소하기라도 하듯, 이야기는 덤덤하게 끝을 맺습니다. 남는 것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던 인물들의 감정이고, 행동이고, 그에 대한 우리의 감상들입니다. 마치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의 인사에 박수를 보내는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이 내용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그저 '끝이 났다.' 또는 '다 봤다.'같은 단순하지만 말하기 힘든 감정인 것처럼 말이죠.
이미 알려진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마치 연극을 보듯, 조급한 마음 없이 가만히 지켜보며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떠올리며, 관객 저마다에게 박수 외에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만화. <온퍼레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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