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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영상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2008

by RaccoonB 2012. 5. 28.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2008)

The Foreign Duck, the Native Duck and God 
8.8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
출연
하마다 가쿠, 에이타, 세키 메구미, 타무라 케이, 오오츠카 네네
정보
미스터리, 드라마 | 일본 | 110 분 | 2008-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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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코타로

 

  본 영화의 원작은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소설입니다. 이사카 코타로는 오쿠다 히데오나 히가시노 게이고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확고한 나름의 스타일을 구축한 터라 은근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작가입니다.

  이사카 코타로가 구축한 자신만의 이야기 스타일을 정리해보면 몇 가지 특징으로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1. 옴니버스 구조 : 연작들에서 등장하는 서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는 한 책이 이루는 거대한 세계 안에 중첩되어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매 편마다 서로 간의 연관을 찾을 수 있는 단서들이 주어진다는 점인데, 심지어 다른 책과의 연관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 <사신 치바>-<마왕>)

2. 갑작스러운 전개 : 대부분의 작품에서 이야기는 평범한 주인공의 특별한 사건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의 세계에서는 어떤 갑작스러운 전개도 없습니다. 단지 드러나지 않은 이유들을 알기 전까지는 갑작스러울 수 있지만요,

3, 반전 :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 느끼는 이야기와 독자의 생각 자체를 뒤집어 버리는 반전은 이사카 코타로도 즐겨 사용하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반전을 알게 된다고 크게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일발 역전보다는 모든 것은 그럴 수 밖에 없게끔 되었다 는 태도가 그의 기본 태도입니다.

 

  원작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이러한 코타로 월드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며 초기작답게 거칠지만 창의적입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떨까요?

 

 

영화 VS 소설

 

  이사카 코타로의 스토리텔링이 항상 일정한 공간적 제약을 두고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진행을 위한 정교한 장치에 가깝습니다. 아파트(<종말의 바보>)라든가, 마을(<러시 라이프>)라든가, 아무리 넓어도 한 도시(<골든 슬럼버>)로 한정된 공간안에서 서로 다른 인물들의 세계를 보는 것은, 장소에 대한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는 동시에 책 한권을 통해 완결된 한 세계를 체험하고 나오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완결된 새로운 세계의 창조, 게다가 장소도 넓지 않고, 초현실적인 일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제작비도 적게 들겠고, 시놉시스는 이미 검증받았습니다. 게다가 개성있는 인물들은 배우들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장면 연결도 영화의 그것처럼 단편적입니다. 암묵적으로 생략되는 부분도 많지 않고 영화로 옮기기에 이보다 더 좋은 소설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영화화하는 족족 평가가 좋지 않습니다. 날카로운 해학은 사라지고, 미묘한 긴장감은 맥없이 끝나버립니다. 이유가 뭘까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코타로 월드' 를 영화화하기 힘든 약점들을 그대로 노출합니다.

 

첫째로, 영화에서는 꾸준하게 한 장소를 조명하기 힘듭니다. 소설에서 보통 작가들은 지형지물에 대해 초반부에 묘사하고 넘어갑니다. 여기에는 자연스럽게 이 장소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의사가 숨어있습니다. 따라서 독자들은 다른 장소가 등장한다고 해서 그곳이 다른 나라, 다른 도시일거라는 생각을 쉽게 하지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모든 사건이 한정된 장소 안에서 일어난다고 여기고 있지요.

  하지만 영화는 다릅니다. 영화가 장소에 대해서 미리 전제할 수 있는 기회는 없습니다. 한 2초간 전경을 보여주며 자막을 넣는 것외에는, 그저 드러난 바, 그리고 인물이 이야기하는 바를 통해 관객이 깨달을 수 있도록 특징을 부각하고 과장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같은 장소를 같은 관점에서 동일하게 계속 삽입할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관객은 그때그때 장소를 추측하지, 매일 지나치는 버스정류장처럼 영화 안의 장소에 익숙해지려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건 두시간 후면 끝나니까요. 따라서 원작이 가졌던 완결적인 세계는 영화 안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둘째로, 시간의 표현입니다. 영화에서 자막이 아니고서야 다른 시간적 배경을 나타내는 방법은 제한되어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영상의 색조를 통한 표현인데, 과거-흑백 정도입니다. 따라서 보통의 영화는 하나 혹은 두 개의 시간적 배경 외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같은 경우는 수없이 많은 시간 배경을 사용하지만 때문에 등장인물은 주인공 둘로 완전히 한정지어집니다. 그리고 사실 영화로는 효과적이지 않았지요. 때문에 다양한 시간 배경을 사용하는 영화는 (<메멘토>처럼 애초에 혼란시키려는 의도가 아니고서야) 보통 각각의 시간 배경을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시켜 액자식 구성이나 옴니버스로 사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코타로 월드'는 한 이야기 안에서 다른 여러 시간 배경이 각자 진행하다가 접점을 찾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더 복잡한 것은 한 시간 배경 안에서도 서로 다른 인물의 관점이 같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영화로 옮기면 최소 세개 이상의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꼴입니다. 다 옴니버스로 따로 떼기 힘든 애매한 길이로 말이지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에서는 그나마 양호한 전략을 쓰는데 과거를 아예 흑백으로 처리합니다. 그리고 한 시점에 몰아서 다 이야기해버립니다. 원작에서 두 사건이 병치되면서 이루어졌던 미묘한 긴장과 후반부의 극적인 해소는 김이 새지만, 어쨌거나 원작의 이야기를 다 하기는 합니다. 반전도 살리구요. 대신 영화적으로는 낮게 평가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었지만..

 

 

인상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소재가 하나의 장치가 되어 완결되는 '코타로 월드'에서는 무엇보다 그 각각의 소재에게 적당한 인상을 부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인상은 남지만 그렇게 주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갑자기 나타날때 사람들은 전율을 느끼지요. 코타로는 이런 적당한 인상을 부여하는데 뛰어난 재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다소 산만합니다. 개성적인 인물을 등장시켜놓고도 인상을 줄 기회가 없거나, 반복해서 등장하지만 좀 애매하게 묻히는 소재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몰입은 낮은 편입니다.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도 애매합니다. 그나마 제대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주인공인 에이타 뿐입니다. 후반부에 가면 에이타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주인공이니까 라고 하기엔 주변 인물들이 너무 밋밋합니다.

 

 

총평

 

  이쯤되면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포스트는 영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에 대한 평론이 아니라 소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에 대한 추천이 목적입니다. '코타로 월드'는 수많은 일본 작가들의 독특한 세계 중에서도 단연 돋보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영화화로는 모두 망했지요. 개인적으로 이사카 코타로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골든 슬럼버>도 영화화 되었는데, 보고나서 '반드시 내가 이 작품을 다시 제작하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위에서 이야기한 바, 이사카 코타로의 스타일이 영화화 하기 난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는 그의 소설은 항상 매우 영화적입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완벽한 하나의 영화가 떠오르게 하는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의 소설입니다.

  아무리 고민하고 고민해도, 영화는 그저 스토리의 낭비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조금 거칠고 서투르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정도 이야기를 가지고 이정도가 과연 최선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