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 잠언 16:9
Pathfinder는 탐험가, 선구자 등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세계 2차대전 중에는 시야확보를 위한 조명탄 투하기, 또는 작전을 선도하는 선도기의 뜻으로 쓰였지요. Pathfinder는 어디에나 필요합니다. 군대의 움직임에도, 조직의 나아갈 길에도, 우리네 인생에도 각자가 가야할 그 Path(길)을 알고 인도해 줄 선도기는 필요합니다. 이번 홀리스터 주제말씀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이 Pathfinder라는 단어였습니다. 오늘은 우리 인생의 Pathfinding을 위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 두편을 가지고 말해보고자 합니다. 주호민 작가의 <무한동력>과 정구미 작가의 <세개의 시간>입니다.
무한동력
18세기 유럽에서는 증기기관을 비롯한 수많은 동력장치의 발명에 따라 최초 투입된 에너지를 끝없이 재활용해서 손실없이 영원히 그 운동을 계속하는 영구기관에 대한 연구와 발명이 붐을 이루었습니다. 물론 운동에 따른 열 손실, 공기의 저항 등을 생각하면 영구 기관, 이를 움직이는 무한 동력이라는 개념은 그저 이루어질 수 없는 허구의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놀랍게도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영구기관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지원하고자 하는 이들도 꽤나 많습니다. 만화 '무한동력'은 이 영구기관을 만들고자 하는 한 아저씨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집에 하숙생으로 온 졸업반 대학생 장선재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평범과 특이함의 차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대중매체는 항상 우리에게 일상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모습들을 소개합니다. 100만이 넘는 취업준비생들, 취직을 못해 휴학을 신청하는 학생들, 토익과 이력서쓰기에 지친 사람들,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사람들, 이른 나이에 빚을 떠안고 고생하는 사람들. 현 세태, 내지는 요즘 청년들의 모습이라고 주어지는 이미지가 대부분 이런 것들입니다.
여기에 반발하여 진정한 꿈을 찾자. 진정한 우리의 인생의 목적을 알고 살자는 움직임 또한 여기저기에서 일어납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모두 가상의 세계인 영화, 드라마, 만화, 소설에서 이루어집니다. 결국 의미있는 삶에 대한 욕구는 가상을 통한 대리만족 이상을 취하지 못합니다. 이는 그만큼 우리가 느끼고 있는 '현실의 벽'이 얼마나 큰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무한동력의 주인공들은 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대학 졸업반으로 부족하기만한 스펙에 고민하는 주인공 장선재, 빚 갚기에 미래를 헌납한 김솔, 공무원 시험에 열중하는 진기한, 이들은 우리 주위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군상들이며 우리또한 그 군상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왜 우리는 마음으로는 우리만의 의미있는 삶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답답하게 매일매일을 익숙한 군상에 끼워맞추는데 급급한 걸까요?
무한동력의 주인공 아저씨는 주위 사람들에게는 이미 유명인사인데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개되기도 합니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들도 다양합니다. 돈벌이가 되겠다 싶어 찾아오는 이들, 유명세에 힘입으려 찾아오는 이들, 허무맹랑하게 비판하는 이들. 하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아저씨가 무한동력을 바라보는 시선과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가 꿈을 대하는 그 진지함을 가진 이가 없다는 거죠.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저씨는 끝없이 무한동력에 매달립니다. 가족들은 그의 무관심에 실망하고, 주위 사람들은 그의 비현실적인 꿈에 거리감을 느끼지만 아저씨는 끝까지 꿈을 바라봅니다. 어떤 것을 바쳐서라도 이루고자 하는 바로 그 꿈. 무한동력은 그런 모두의 마음속에 있을 법한 이상향을 대변합니다. 그의 꿈은 남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단지 다른 이들이 추구하지 않은 길일 뿐이지요. 대기업에 취직해서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사는 것. 우리에게 식상하고 일반적인, 하지만 가장 이상적으로 보이는 이 이야기 또한 처음에는 누군가의 진지한 꿈이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지함 없이 이 꿈을 목표로 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난도질당한 이 꿈은 이제는 누구나 아무 생각없이 바라는 꿈이 되었습니다. 사회는 이런 꿈에 대한 허상을 끝없이 교육하고 학습시켜 수많은 이들의 꿈 위에 막연한 '좋은 삶'을 덮어씌우고 여기에 순응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일탈자로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아저씨는 모든 이들 앞에 '특이한 사람'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좋은 삶'이라는 허상아래 덮인 모두의 평범함과, 가치의 평가를 거부하며 그 스스로가 끝까지 매진하는 특이한 꿈. 우리는 섣불리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 판단할 수 없지만, 그저 모두의 가슴 속에 자신도 모르게 따르게 되는 것은 과연 어느 쪽일까요?
모두 제자리로
무한동력은 모두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인물이 매일 매일 살아가는 그 일상은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지만 그 모두가 바라고 있는 그들 스스로의 '제 자리'는 아닙니다. 공무원 수험 준비를 하는 진기한은 본래 명문대 수의학과생입니다. 하지만 그는 동물을 만지기를 두려워했습니다. 때문에 모두가 바라고 원하는 길을 포기하고 그저 게임과 적성에도 안맞는 공무원 공부에 매달리며 살아갑니다. 제 자리를 잃은 이에게는 어디를 가도 가시방석이요, 어디에 있어도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합니다. 진기한은 자신을 극복하기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하숙집 강아지를 치료하게 되면서 진기한은 도망쳐야할 이유를 잃어버립니다. 실제로는 그야말로 '별 것' 아니었던 것이 그동안 자신을 막고 있었음을 깨달은 거지요.
김솔은 부모 잘만나서 자기 가게를 차려 살고 있는 친구에게 빌붙어 빚을 갚고 있는 자신의 삶을 한탄합니다. 그러면서 매일 좀 더 나은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들에 불평하며 매일매일 지내는 인물이지요. 하지만 그런 삶속에서 그녀는 결국 빚을 다 갚고, 가게일에 사장인 친구보다 더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이야기에 끝에 이르러 유학을 떠나며 자신에게 가게를 맡기겠다는 친구의 결정을 들으며 김솔은 그런 불평가득했던 삶을 근근이 살아나갔던 것들이 모두 자신의 가게를 위한 자산으로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인공 선재는 목표하던 증권계열사 면접을 마치고 돌아옵니다. 1차 서류 합격 후 그렇게 긴장하며 찾아든 사장과의 면접에서 편하게 이야기나 하자는 사장의 이야기에 그는 그렇게 준비했던 공부도, 영어도, 기업 상식도 아닌 그의 하숙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모두가 알아야한다고 외쳐댔던 수많은 중요한 것들이 아닌, 어쩌면 그저 TV에 잠깐 나왔던 신기한 이야기로 그칠 수 있는 사소한 이야기지만, 선재는 그것이 자신이 직접 겪고 알고 살아가는 이야기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진짜 가진 것임 또한 말이지요.
그리고 아저씨는, 다시 자기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묵묵하고 우직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바로 그 자리로 돌아갑니다. 무한동력을 향해서 말이죠.
길을 떠나기 위해서는 올바른 출발이 필요합니다. 올바른 출발은 올바른 출발지점에서 가능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출발이 어디서 어디로 향해 이루어져야 하는 지도 모르는 채 그저 출발해야한다는 강박과, 나도 어서 남들처럼 저 멀리 나아가야한다는 조급함이 가득한 채로 우리는 어디론가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 바쁩니다. 그래서 가끔 멈춰서 옆이나 뒤를 돌아보면 그저 멍하니 '여기가 어디지'하고 당황하곤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끝없이 방황하고 끝없이 길을 잃으며 그저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저씨는 과연 끝내 무한동력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요? 언제가 될지, 그것이 가능은 할지,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확실한 것은 아저씨가 결코 무한동력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자리를 확실히 알고 있으며 자신이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야할지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다른 주인공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직 어떤 진보도, 어떠한 화려한 성과도 이루지 못했지요. 이제 겨우 출발점에 섰을 뿐입니다. 선재의 취직은 결정되지도 않았고, 기한은 스물 일곱에야 겨우 복학을 하고, 김솔은 그저 2년동안 가게를 맡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출발로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출발점은 누가 정해준 것도 누가 맞다고 알려준 것도 아닌, 그들 스스로가 찾아낸, 그들이 그렇게 찾아헤매던 바로 그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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